말레이시아 페낭의 조지타운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풍부한 역사적 유산을 간직한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특별한 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화합의 거리(Street of Harmony)’라 불리는 ‘잘란 마스짓 카피탄 켈링(Jalan Masjid Kapitan Keling)’입니다. 불과 수백 미터 남짓한 이 짧은 길 위에는 기독교 교회, 중국식 사원, 힌두교 사원, 그리고 이슬람 모스크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신을 모시는 이들이 어떻게 한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을까요? 페낭이 전하는 화합의 메시지를 따라 이 거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겠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교회, 성 조지 교회
화합의 거리 여행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눈부시게 하얀 외벽을 자랑하는 ‘성 조지 교회(St. George’s Church)’가 서 있습니다. 1818년에 완공된 이 교회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건축물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매우 우아하고 정갈한 느낌을 줍니다.
푸른 잔디밭 위에 우뚝 솟은 하얀 기둥과 뾰족한 첨탑은 조지타운의 이국적인 풍경 중에서도 단연 돋보입니다. 교회 앞마당에는 이곳의 설립에 기여한 프랜시스 라이트 경을 기리는 작은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페낭의 근대사를 짐작게 합니다. 일요일이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여드는 신자들의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살아있는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정갈한 내부로 들어서면 화려함보다는 경건함이 느껴지는 공간이 펼쳐지며, 번잡한 도심 속에서 잠시 마음을 고르는 여유를 선사합니다.
자비의 여신을 모시는 페낭의 심장, 관음사
성 조지 교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공기 중에 은은하게 퍼지는 향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바로 페낭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식 사원인 ‘관음사(Kuan Yin Temple)’에 도착했다는 신호입니다. 1728년경 중국 이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이 사원은 자비의 여신인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곳입니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면 화려한 용 조각이 새겨진 지붕과 붉은 기둥들이 시선을 압도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현지인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공간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커다란 향을 들고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조지타운의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사원 마당에는 수많은 비둘기 떼와 향 연기가 뒤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명절이나 축제 기간에는 화려한 등불과 공연으로 거리 전체가 활기로 가득 찹니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페낭의 중국인 공동체를 지탱해 온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곳입니다.
정교한 조각의 미학, 스리 마하마리아만 사원
중국식 사원의 붉은 기운을 뒤로하고 걷다 보면, 갑자기 눈앞에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리틀 인디아(Little India) 구역의 중심에 위치한 ‘스리 마하마리아만 사원(Sri Mahamariamman Temple)’입니다. 1833년에 세워진 이 사원은 페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힌두교 사원으로, 인도 남부 사원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고푸람(Gopuram)’이라 불리는 입구의 거대한 탑입니다. 층층이 쌓인 탑 위에는 38개의 힌두교 신들과 여신상, 그리고 신비로운 동물 조각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하나하나 살아 움직일 듯한 생동감 넘치는 조각들은 힌두교 신화의 세계를 거리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사원 내부에서는 인도 특유의 음악 소리와 의식에 사용되는 꽃향기가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강렬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힌두교 신자들이 이마에 ‘푸자’의 흔적을 남기고 드나드는 모습은 이곳이 얼마나 활발한 종교적 삶의 현장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황금빛 돔 아래 평화가 깃든 카피탄 켈링 모스크
화합의 거리 끝자락에는 조지타운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로 손꼽히는 ‘카피탄 켈링 모스크(Kapitan Keling Mosque)’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801년 인도계 이슬람 상인들의 지도자(카피탄)였던 카우데르 모이딘에 의해 세워진 이 모스크는 페낭 이슬람 역사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노란색 외벽과 대비되는 검은색 돔,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미나레트(첨탑)는 무굴 제국 양식의 우아함을 극대화합니다. 해 질 녘 노을이 모스크를 비출 때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외관이 장관을 이룹니다. 기도 시간이 되면 거리 가득 울려 퍼지는 ‘아잔(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은 이 거리의 다른 사원들의 종소리나 향 냄새와 자연스럽게 섞입니다. 모스크 내부는 기하학적인 문양과 정교한 서예로 장식되어 있어 이슬람 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비무슬림 방문객들도 적절한 복장을 갖추면 내부를 관람할 수 있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깃든 공간이기도 합니다.
화합의 거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여행 가이드
페낭의 화합의 거리가 전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신념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살아있는 다문화주의’ 때문입니다.
방문객을 위한 실전 팁
- 복장 규정 준수: 모든 종교 시설은 신성한 장소입니다. 특히 모스크와 힌두 사원에 입장할 때는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복장이 필수입니다. 카피탄 켈링 모스크에서는 방문객을 위해 무료로 가운을 대여해주기도 하니 이를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 도보 여행의 즐거움: 네 곳의 성지는 모두 도보로 15분 내외 거리에 모여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각 종교의 건축 양식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 주변 명소 연계: 화합의 거리는 리틀 인디아와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원 관람 후 리틀 인디아에서 인도 전통 음식인 ‘로티 차나이’를 맛보거나, 인근 벽화 거리에서 페낭의 예술적 감성을 즐기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 운영 시간 확인: 각 사원마다 신자들의 기도 시간이나 일반 관람 시간이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금요일 오후는 모스크의 정기 예배가 있는 시간이므로 방문 전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화합의 거리를 걷다 보면 종교는 서로를 가르는 벽이 아니라, 한 울타리 안에서 어우러지는 풍성한 문화의 결임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 종소리와 아잔 소리가 공존하는 이 거리의 풍경은 갈등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포용과 존중이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고 있습니다. 페낭을 방문한다면 이 짧은 거리를 걸으며 수백 년간 이어져 온 화합의 에너지를 몸소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장소명 | 종교 | 주요 특징 |
|---|---|---|
| 성 조지 교회 | 기독교(성공회) |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화이트 신고전주의 양식 |
| 관음사 | 중국 불교/도교 | 페낭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사원, 화려한 용 조각과 향 연기 |
| 스리 마하마리아만 사원 | 힌두교 | 38개의 신상으로 장식된 화려한 고푸람, 리틀 인디아의 중심 |
| 카피탄 켈링 모스크 | 이슬람교 | 무굴 양식의 검은 돔과 노란 외벽, 인도계 무슬림의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