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라고 하면 으레 푸른 동해 바다와 설악산의 비경, 그리고 시끌벅적한 중앙시장의 닭강정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속초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깊이 있는 문화를 품은 도시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속초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문학의 도시’로 새롭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 아닌, 주인의 취향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동네 서점들이 골목을 지키고,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들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끌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이번 여행지는 속초가 제격입니다. 바다 내음 섞인 바람을 맞으며 책방을 순례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려보세요.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내면을 채우는 조용한 여행, 속초의 서점과 북카페 투어를 안내합니다.
속초 서점 투어의 살아있는 역사, 교동의 양대 산맥
속초 교동은 책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에게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두 곳의 터줏대감 서점이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초의 문화적 긍지를 보여주는 이 두 서점은 속초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먼저 소개할 곳은 1984년부터 교동을 지켜온 ‘문우당서림’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상업 공간을 넘어,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과 공간이 소통하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서점 곳곳에 적힌 문장들입니다. 책 속에서 길어 올린 아름다운 글귀들이 계단, 벽면, 서가 곳곳에 붙어 있어 마치 문장으로 지어진 집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마주하는 글귀들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서가 배치와 조명 또한 매우 감각적이어서, 책을 고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체험처럼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문우당서림에서 머지않은 곳에 또 하나의 전설적인 서점, ‘동아서점’이 있습니다. 1956년에 문을 열어 무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이곳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인증한 ‘백년가게’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서점이라는 따뜻한 서사는 공간 곳곳에 묻어납니다.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적이고 편안한 분위기로 탈바꿈했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깊이는 여전합니다. 동아서점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로컬 콘텐츠’에 대한 애정입니다. 속초의 역사,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소개하며, 서점 주인이 직접 쓴 큐레이션 메모는 책을 고르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하얀색 단정한 외관은 여행객들의 ‘인증샷’ 명소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취향을 팝니다, 하룻밤 머물고 싶은 독립서점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가 아닌, 운영자의 확고한 취향을 엿보고 싶다면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완벽한 날들’로 향해야 합니다. 메리 올리버의 에세이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서점이자 카페, 그리고 여행자가 머물다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북스테이)입니다.
터미널에서 도보로 2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어 뚜벅이 여행자들에게는 여행의 시작이자 마지막 쉼터가 되어줍니다. 1층 서가에는 운영자가 고심하여 고른 독립출판물과 인문학 서적, 에세이들이 빼곡합니다. 대중적인 유행을 쫓기보다 깊이 있는 사유를 이끄는 책들이 많아, 평소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특히 창가에 마련된 테이블은 혼자 여행 온 이들이 커피 한 잔과 함께 구입한 책을 읽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책에 몰입하는 운치가 그만입니다.
2층은 오직 예약한 투숙객만을 위한 공간으로, 책과 함께 밤을 지새우는 로망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책과 선물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나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니 방문 전 소식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설악의 품에 안겨 읽는 책, 압도적인 힐링 공간
속초의 자연이 주는 웅장함 속에서 독서를 즐기고 싶다면 노학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설악산책’을 추천합니다. 설악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이곳은 이름처럼 ‘설악산’과 ‘산책’, 그리고 ‘책’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건물에 들어서면 높은 층고와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설악산 울산바위의 전경에 압도됩니다.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진 ‘산&책’ 공간은 도서관과 서점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무려 1만여 권에 달하는 장서를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1층에서는 신간과 주제별 도서를, 2층에서는 예술 서적과 원서, 어린이 도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도서 관리 상태가 매우 훌륭하고, 곳곳에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활자에 빠져들게 됩니다.
2층에 자리한 ‘카페소리’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명품 스피커 탄노이와 진공관 앰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클래식과 재즈 선율은 공간을 가득 채우며 청각적인 힐링을 선사합니다. 통창 밖으로 보이는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일명 ‘산멍’을 즐기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게 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노트북 작업이 가능한 넓은 테이블도 있어 디지털 노마드나 워케이션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최적의 장소입니다.
서점 투어 후 잠시 멈춤, 숨겨진 신상 북카페
열심히 서점을 돌아다니며 양손 가득 책을 샀다면, 이제는 편안하게 앉아 책장을 넘길 공간이 필요합니다. 교동의 서점들과 가까운 곳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 ‘북카페 베리트’가 있습니다.
속초관광호텔 3층에 위치한 이곳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히든 스팟’입니다. 호텔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예상을 뛰어넘는 쾌적하고 조용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호텔 특유의 높은 층고와 정갈한 인테리어 덕분에 차분하게 독서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시끄러운 카페 소음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여행자나, 조용히 업무를 봐야 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입니다.
이곳은 책을 읽기 좋은 환경일 뿐만 아니라, 커피 맛으로도 입소문이 난 곳입니다. 유명 커피 브랜드인 ‘프릳츠’ 원두를 사용하여 깊고 진한 커피 맛을 자랑하며, 특히 우유의 고소한 단맛을 극대화한 시그니처 라떼와 크림 라떼가 인기 메뉴입니다. 책을 판매하지는 않지만, 한강 작가의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소장 도서가 비치되어 있어 빈손으로 방문해도 충분히 독서를 즐길 수 있습니다. 문우당서림이나 동아서점에서 구매한 책을 들고 와 맛있는 라떼 한 잔과 함께 독서 삼매경에 빠져보시길 권합니다.
에디터가 추천하는 여행 동선
속초의 책 문화를 온전히 즐기기 위한 두 가지 추천 코스를 제안합니다. 자신의 여행 스타일에 맞춰 선택해 보세요.
1. 뚜벅이 여행자를 위한 ‘골목 산책’ 코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완벽한 날들’에서 여행의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독립출판물의 매력을 느낀 뒤, 천천히 걸어 교동으로 이동합니다. 속초 서점의 양대 산맥인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을 차례로 방문하여 공간을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고릅니다. 다리가 아파질 때쯤, 근처 ‘북카페 베리트’로 이동해 샀던 책을 펼쳐 들고 달콤한 라떼와 함께 휴식을 취합니다.
2. 드라이브 여행자를 위한 ‘자연 힐링’ 코스
차량을 이용한다면 이동 반경을 넓혀 봅니다. 먼저 시내에 있는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을 둘러보며 속초의 로컬 감성을 충전합니다. 이후 차로 10~15분 정도 이동해 노학동의 ‘설악산책’으로 향합니다. 주차 걱정 없이 여유롭게 설악산의 풍경을 감상하고, 웅장한 서가 사이에서 책을 읽거나 카페소리에서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속초에서의 책 여행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닙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문장 하나가 여행의 기억을 평생 간직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이번 주말, 속초로 떠나 파도 소리 대신 책장 넘기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